나를 위한 목공힐링 ‘소울우드’ ( 1 )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몇 년을 더 산 ‘소울우드’ 김영일 대표의 인생이야기.

김영일 대표(he is?)

김영일 대표는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기계업체에 근무하였습니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치 않게 학원운영을 시작하였고 한때는 강사와 잘나가는(?),학원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교육과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광고 컨설팅업으로 전직을 하였고, 이때 새로운 인행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꼬이고 바뀌어 버렸고, 몇 년을 방황하다. 우연치 않게 찾게된 공방에서 인생의 새로운 방점을 찍을 목공과의 만남으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목공을 자신의 힐링과 고민의 해방 공간으로 삼아온  목공쟁이 입니다.

인생의 목공방

6월의 어느날 은평구에 위치한 그의 목공방을 방문하였을 때, 보통의 목공방과의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작은 규모의 아기자기한 소품, 서랍장, 원목 도마…한켠에 작업하다가 중단한 나무 조각과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이 어지렵혀져 있었다. 때마침 요즘 유튜브 영상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같이 근무하는 이동현 팀장과 영상담당자가 부지런히 주변정리와 촬영준비를 함께 하고 있던 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공방 구경을 하던중 벽 한켠에 목판에 그려져 있던 세개의 목판그림을 보게 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사연이 있고,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하는 작품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겟구나 하면서 김영일 대표에게 직접 제작하신 것이냐고 물어보왔고, “ 겨울에 손님이 없는 저녁에 혼자 있을 때 심심해서 만들었다.” 고 하였다. 한참을 목판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김영일 대표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지 않아도 듣는 듯하였다.

67년 양띠생인 김영일 대표는 목공과는 관계없는 기계 그것도 설계쪽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과 계통이 좋고, 설계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잡은 첫직장은 엔지니어 회사에서 설계를 담당한 일로 시작 하였다. 언뜻 보기에도 내성적이고 말수가 별로 없는 김영일대표에게 맞는 일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4년을 일했고, 운명은 또 찾아왔다.

 결혼 그리고 변화

보통 결혼은 운명의 만남이라고 했다. 그것이 우연이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든.. 김대표의 결혼도 그러 했다. 김영일 대표의 어려서의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고 한다. 전쟁고아이신 아버지 밑에서 컷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부터 여러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만난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를 만난 것은 먼 외지, 아르헨티나에 있는 친구의 방문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그 친구는 대한민국의 반대편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한국에를 찾게 되었고, 친구인 김대표와 같이 몇일을 생활 했다. 아르헨티나로 가기 바로전에 필요 물건을 구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그때 여러가지 일을 하고, 차를 가지고 있었던 김대표는 그 물건을 구해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 장소로 갔다.

약속장소에서 한시간 두시간을 기다리던 김대표는 옆쪽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를 보았다고 한다. 속으로 “저 여자도 바람 맞았나봐..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친구는 몇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계속 기다리던지 집으로 가던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때 친구가 손을 흔들면서 나타났고, 김영일 대표는 기쁜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는 김영일 대표가 아닌 옆에 서있던 그녀에게 손을 흔든것이었다. 김대표와 그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고, 인연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는 방법을 알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사는 것도 자전기 타기나

피아노 연주하기처럼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지혜로워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출처]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결혼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결혼은 또하나의 인생의 변화였다. 결혼후 학원을 운영하는 처가집의 끊임없는 권유로 새로운 직업을 얻게 되었다. 새로운 직업은 학원 운영과 강사였다. 이공계를 전공한 덕분에 학원운영과 강의는 적성에 맞는 직업 이었다고 한다. 학원에서는 물리를 강의 하였고, 모든것이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7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이과축소정책과 IMF라는 큰 파고는 견디지를 못하였고, 학원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하나의 기술을 배우고 나니, 어려움에도 또 다른 변화가 가능했고, 2001년에는 학원 광고. 컨설팅을 하는 디자인 기획사를 시작하여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의 가두를 달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고 그리고 절망

그날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고 한다. 임신을 한 와이프가 출산을 위해 계속 찾던 병원에서 갑자스런 사고를 당하면서.. 그날이후 김영일 대표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희망이 끊어진 절망의 계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영일 대표 여짓껏 살던, 인생의 지반이 무너졌고, 한동안 폐인생활을 하였다. 인생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것이 내려 앉았다. 집,가족,사회,친구,구성원 모든 것이 필요없었고, 쓸모가 없었다. 그날 이후에는…

딸, 사는 이유

그런 생활 속에서 어느날 딸이 보였다. 하나 밖에 없는 딸,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돌아 보게 되었고,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한동안의 밑바닥 생활로 친구도, 가족도,모두 주위에 없었다. 그러나 새로 시작해야 했다.

우선 연을 놓치 않고 있던 선배에게 소나타를 빌렸고, 전에 일했던 업체와 지인에게 일거릴를 얻어서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이 목공방을 지나다가, 들어가게 되었고, 목공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계속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